언론 보도2016. 5. 12. 18:36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no=242579&year=2016



음악 영재들이 모인 그곳, 주영 교수 커티스음악원



[나의 모교-2] 백주영 서울대 교수(음악대학·바이올린)를 만난 날은 경칩이 막 지나고였다. 금박이 수놓인 검정색 구두가 음표가 휘날리는 오선지 같았다. 단발에 백팩형 바이올린 가방을 멘 백 교수는 '11년차 교수' '29세 최연소 임용' 등의 수식어가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봄과 같은 경쾌한 이미지였다. 

 백 교수는 199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커티스음악원에 입학해 1997년에 졸업했다. 서울예고 2학년 때 도미해 커티스에 입학했다. 커티스는 당시에는 21세 미만만 입학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제한이 없어졌다. 

 "커티스에서는 음악을 가르치기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이전에 입학한 학생들은 학교가 소개해 준 'Friends Select School' 등 인근 고등학교를 다녀요. 커티스에서는 음악을 공부하는 거고요. 제 동생도 커티스에 다니면서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백 교수 동생인 백나영 씨(현 세종솔로이스츠·미국 뉴저지 심포니 단원)는 1995년 커티스에 입학한 후 고등학교를 다니며 학업을 계속했다. 음악 영재를 조기 발굴할 수 있는 좋은 제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자에 대한 소개글을 보면 '○○○ 교수 사사(師事)'라는 설명이 꼭 따라다닌다. 수업에 의한 집단 교육이 아니라 개인 레슨에 의한 1대1 지도로 교육이 이루어지기에 어느 학교를 다녔느냐 이상으로 누구에게 배웠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는 애런 로잔드(Aaron Rosand) 선생님께 배웠어요. 곧 90세가 되시는데 저는 60대 중반 때 배운 거죠. 아직도 가르치고 계세요. 저 배울 때는 레슨 들어가기 전에 선생님 기분을 미리 살피고 들어갔는데 요즘은 안 그렇더라고요. 역시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나봐요!"(웃음)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대학 교수의 정년이 65세로 보장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정년 퇴직이라는 것이 나이에 의한 강제 퇴직으로 여겨졌다. 과거에는 우리처럼 65세였는데 1982년부터 70세로 연장됐고, 연방법에 의해 1994년 이후에는 강제 정년 퇴직 연령이 폐지됐다. 즉 나이를 먹었다고 그만둬야 하는 전통이 법으로 금지된 것이다. 보통 연금 등을 받으며 노후를 즐기기 위해 65세 내외에 은퇴하는 것이 보통인데, 커티스 전통 때문인지 로샌드 교수는 여전히 강단에 서고 있다. 커티스는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예술혼을 학생들에게 전수한 열정적 노교수들로도 유명하다. 피아노를 가르쳤던 미예치슬라프 호르소프스키(Mieczyslaw Horszowski·1892~1993년)는 백 살에도 커티스에서 가르치다 생을 마감했고, 첼리스트 올랜도 콜(Orlando Cole·1908~2010년)도 증손뻘 학생들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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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런 로샌드(1927년생·현재 커티스음악원 교수)는 커티스를 졸업한 커티스 교수다. 탁월한 연주 실력과 제자 양성으로 유명하지만 비운의 연주자로 음악계에서는 더 유명하다. 1997년 70세의 나이에 카네기홀에서 독주회를 할 때 50대처럼 무대를 날아다닐 정도였다고 백 교수는 회고한다. 70대 후반에도 음반을 녹음할 정도로 지치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다. 2001년 사망한 아이작 스턴(Isaac Stern)과의 불화 때문에 실력에 비해 인정을 못 받았다는 것이 음악계에서는 정설이다. 수업 시간에도 시가를 피우며 레슨을 하는 기행과 자신의 과르니에리 델 제수 바이올린을 당시 시가(700만~800만달러)보다 훨씬 비싼 1200만달러(약 130억원)에 내놔서 명품 바이올린의 호가를 높인 사건 등으로도 유명하다. 

필라델피아는 필리치즈스테이크라는 저민 고기를 볶아 그 위에 치즈를 올려놓은 샌드위치와 필리치즈라는 크림치즈로 유명하다. 그래서 미국 내 최고 비만 도시로도 유명하다. 군살이라고는 전혀 없는 백 교수에게 필리치즈스테이크에 대해서 물었더니 역시 거의 먹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저희 학교는 센터시티(Center City)라고 불리는 시내 중심부에 있어요. 필리치즈스테이크를 파는 곳은 사우스스트리트(South Street)로 꽤 멀리 떨어져 있어요. 공부하느라고 바빠서 거의 가보지 못했어요." 너무 바른 생활로 가득한 학창생활인 거 같아서 일탈의 장소가 없었는지를 계속 캐물었다. "학교 근처에 벨기에 초콜릿가게(Belgian Chocolate House)가 있었어요. 유태인 노부부가 운영하시는 가게였는데 소녀감성을 자극하는 정말 예쁜 곳이었어요. 벨기에에서 수입한 초콜릿, 아이스크림, 과일에 든 셔벗 등이 당시 분출하는 제 아드레날린을 잠재우는 역할을 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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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커티스음학원 재학시절 백 교수(오른쪽)
 맛있는 초콜릿을 만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답이 이어졌다. "1995년 시벨리우스 콩쿠르가 끝나고 마음이 좀 허전했어요. 때마침 제 동생 나영이가 커티스로 유학을 오기도 했고요. 이때부터 베이킹을 하기 시작했어요. '더 쿠키 북(The Cookie Book)'과 '더 초콜릿 북(The Chocolate Book)'을 보면서 만들었어요. 제 동생뿐 아니라 친구들이 제가 만든 케이크, 쿠키, 초콜릿 등을 자주 나눠 먹었어요. 다음해인 1996년 밸런타인데이에 커티스에 있는 싱글 친구들을 다 집으로 초대해서 초콜릿 파티를 한 적도 있고요." 커티스는 전 학년이 160여 명밖에 안 되기 때문에 가능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한 학생만큼만 입학생을 뽑기 때문에 음악 영재들의 바통 터치가 이뤄지는 집합소가 아닌가? 

커티스 졸업생은 정말 많다. 서울대 음악대학 초대 학장을 지낸 작곡가 현제명 선생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평생 쫓아다니는 현해은 서울대 명예교수(바이올린)가 한국인 최초 입학생이다. 현직 서울대 교수만도 백주영 교수 이외에 김영욱 (바이올린)·최은식(비올라)·윤혜리(플루트) 교수 등이 있다. 연세대 음악대학은 요즘 실내악 대중화에 앞장서는 강동석 교수(바이올린)가 커티스 출신이다. 같은 학교 김현아 교수(바이올린), 이경숙 명예교수(피아노)도 커티스 출신이다. 이경숙 교수의 경우는 딸과 사위가 모두 커티스 출신이다. 사위인 로베르토 디아즈는 현재 커티스음악원 총장이기도 하다. 


20년 전이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커티스 시절을 회고하는 백 교수의 기운은 갓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를 뛰놀게 할 것 같았다.  밝고 쾌활한 웃음과 재미있지만 진지한 이야기로 인터뷰 내내 즐거웠다.

[박대권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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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박대권 명지대 교수


※'나의 모교'는 해당 학교 출신 졸업생을 인터뷰하며 해외 유수 대학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박대권 명지대 교수(청소년지도학과·컬럼비아대 교육학 박사)가 사회 각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인사들을 만나 유학 시절 얘기를 듣고 작성합니다. 해외 유학을 준비 중인 독자들에게 해외 학교에 대한 보다 생생하고 손에 잡히는 정보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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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톰프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