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2015. 7. 20. 11:18

[출처]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7/19/20150719001648.html?OutUrl=naver



명품 악기 만난 샛별들… 꿈을 연주하다


최소 30억원.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가 지난 17년간 거쳐온 바이올린 몸값을 모두 합한 금액이다. 1998년 초등학교 6학년이던 그가 가진 바이올린은 200만원짜리 국산이었다. 악기 제작자 세자르 칸디의 바이올린으로 바꾸자 “이런 악기도 있구나” 싶었다. 2001년 1740년에 만들어진 도미니쿠스 몬타냐나로 갈아탔다. 다시 1794년산 주세페 과다니니 크레모나, 1774년산 요하네스 밥티스타 과다니니 투린으로 넘어갔다.

1774년산 요하네스 밥티스타 과다니니 투린. 
금호아트홀 제공

마지막으로 그가 정착한 바이올린은 4년 전 바꾼 요하네스 밥티스타 과다니니 파르마(1763년산)다. 그는 “투린이 더 고가지만 파르마는 음정 면에서 내 손과 딱 맞아떨어지고 원하는 소리를 낸다”고 설명했다. 그가 어마어마한 악기값을 걱정하지 않고 최적의 소리를 찾을 수 있었던 건 금호악기은행 덕분이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1993년부터 악기은행을 운영하며 유망주에게 악기를 무상으로 빌려주고 있다. 최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임지영, 피아니스트 손열음 등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이 제도를 통해 자신의 악기를 찾은 연주자 세 명이 서울 종로구 금호아트홀에서 독주회를 연다.

◆“악기는 동반자이자 목소리”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음악가는 악기를 가릴 수밖에 없다. 권혁주는 “연주자에게 악기는 동반자”라고 말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는 “바이올린은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말할 수 있게 하는 목소리”라고 정의했다. 그는 “목소리에 따라 말의 신뢰도가 달라진다”며 “연주자는 무대에서 악기로 말하니, 악기가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겠죠”라고 되물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연주자와 무생물인 악기의 관계는 사람 사이와 비슷하다. 권혁주는 “연주자와 악기도 서로 대화한다”며 “악기의 미세한 문제점까지 파악해 단점을 잘 숨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은 사랑하는 것처럼 연주해야 소리가 잘 나온다. 과르네리는 오히려 싸우듯 연주해야 한다.

사람 사이 궁합은 악기와 연주자에도 적용된다. 2011년 금호악기은행에서 과다니니 투린(1774년산)을 받은 김봄소리는 “처음 이 악기로 연주한 날을 잊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금호아트홀에서 현을 긋는 순간 울림이 너무 좋고 깊어서 놀랐다”며 “몇 곡을 해봤는데 처음 쓰는 악기임에도 몸에 딱 맞는 옷같이 편하고 연주가 수월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기술적으로 문제있던 부분들이 어느 정도 보완될 만큼 차이가 대단했다”며 “신기하게도 쓸수록 더 많은 색깔들이 발견되고 소리가 깊어진다”고 전했다. 권혁주는 “같은 악기여도 연주자의 개성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며 “내 경우 다른 바이올린을 빌려 연주하면 원 주인이 ‘분명히 그 악기 소리가 아닌데’라고 말하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명품으로 남으려면 만듦새만큼 관리가 중요

첼리스트 김범준

악기도 자라온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300, 400년 된 고악기일수록 더하다. 물리적 관리·보수는 물론 어떤 연주자를 만나왔는지도 악기의 운명을 가른다. 금호악기은행의 악기를 점검해주는 스트라디 현악기 공방의 김동인 대표는 “연주자는 악기 소리를 만드는 중요한 존재”라고 말했다. 그는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바이올린이 명기가 된 데 대해 “좋은 재료를 써서 아름다울 정도로 잘 만든 것 못지않게 좋은 연주자의 손을 거친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대로 보살핌 받지 못한 악기는 설사 스트라디바리가 만들었어도 현재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금호악기은행 수여자들의 무대는 이처럼 악기의 역사를 지켜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첫 무대는 김봄소리가 연다. 30일 공연에서 슈베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바흐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파르티타 제2번 중 샤콘 등을 연주한다. 지오카니니 파올로 마치니(1600년산)를 임대받은 첼리스트 김범준은 내달 6일 무대에 오른다. 슈트라우스 첼로 소나타,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등을 들려준다. 내달 13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관객과 만난다. 슈베르트 론도 b단조 ‘화려한 론도’,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 등을 공연한다. 9000∼4만원. (02)6303-1977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Posted by 스톰프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