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2016. 5. 12. 18:44

[출처]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60408000019


[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 182. 시규어 로스

우아함과 세련됨, 음악을 담는 오래된 그릇 가게


▲ 시규어 로스의 앨범. 김정범 제공



추운 겨울이나 고된 하루를 마친 날에 유난히 따듯한 국밥이나 찌개 한 그릇이 생각 날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럴 때면 종종 주위의 식당을 찾고는 합니다. 그런데 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편견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업소용 뚝배기 그릇에 담겨 나오면 항상 음식에 만족을 못 하고 자리를 일어나게 되더라고요. 저는 어디서나 똑같이 생긴 식당 뚝배기 그릇에 담긴 음식이 유난히 싫은 모양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경제적인 비용면이나 편리함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식당이란 것을 이해는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혹시 집에서 라면을 끓였을 때 냄비째로 먹지 않고 그릇에 담아내서 먹을 때의 차이를 느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분명 같은 라면인데 그릇에 담는 라면과 냄비째 끓인 라면의 맛이 다릅니다. 분명 그릇이 음식을 변화시킨 것도 아닐 텐데 맛의 차이가 나는 것은 단순히 저의 기분 탓이었을까요?

여행하게 되면 그 도시에서 항상 가장 먼저 들러 쇼핑을 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그릇이나 컵을 파는 가게입니다. 어릴 적에는 찻잔이나 그릇 등에 관심을 두는 것이 참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음식이나 마실 것을 담는 도구일 뿐인데 왜 이러한 것에 특별한 비용을 들이거나 관심을 가지는지 좀처럼 알기 어렵더군요. 

사실 음식이나 마실 것을 어디에 담느냐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식기가 비싼 것이냐 아니냐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지요. 사람마다 만드는 음식이 다르고 음식의 종류와 빛깔 역시 분명 다릅니다. 그만큼 그것을 담아내는 도구 역시 그 내용물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또한 다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음식을 담아내는 도구가 그 음식과 맞을 때 그 음식은 비로소 온전해지는 것이거든요. 맛이라는 것은 한 가지의 촉각으로 우리에게 인지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음악을 들을 때도 그 순간의 시각과 촉감과 함께 기억하고 받아들이게 되잖아요. 맛을 본다는 것 역시 내용물의 온도와 질감 그리고 시각 등 모든 오감을 사실 전부 사용하는 행위입니다. 아무리 오래되고 허름한 가게라 하더라도 소박한 찬들과 식사가 지역에서 손수 만들어진 유기그릇에 담겨 나올 때면 음식의 격과 정성이 달리 느껴지게 됩니다. 반대로 아무리 유행에 맞고 유명한 음식점이라 하더라도 식당에 들렀을 때 테이블에 그릇이나 잔들을 보고 실망스러운 음식을 예상할 수 있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새 앨범을 접할 때면 항상 질 좋고 안목 있는 그릇과 찻잔을 사용하는 식당에 온 기분이 듭니다. 이미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을뿐더러 그 고유의 진한 개성과 향은 지독할 만큼 변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이 지독한 향기를 담는 그릇은 매번 그 우아함과 세련된 선택을 뽐내는데 거침이 없습니다.  

이들의 오래된 아집스러운 고독함이 세월과 유행을 타지 않는 것도, 폭이 넓은 마니아층의 끊임없는 지지를 계속 얻어 갈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아닐까 합니다. 무엇을 담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무엇으로 담아내야 하는가 역시 중요한 것이니까요. pudditorium.com

 
김정범
  
 
뮤지션

Posted by 스톰프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