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2016. 10. 25. 11:00

[출처]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61020000233


[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 208. 존 메이어

가장 미국적 팝 스타, 음악의 멋을 아는 싱어송라이터


▲ 존 메이어의 LA 라이브 공연 앨범. 김정범 제공


가장 미국적인 팝 스타를 꼽으라면 수없이 많은 음악가가 머릿속에 떠오르는데요. 그래도 저에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존 메이어(John Mayer)를 꼽을 것 같습니다. 
 
1977년 미국 코네티컷에서 태어난 그는 2003년 그래미상 최우수 남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받으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이후에도 수차례 그래미상을 수상하며 상업적인 성공과 음악성을 모두 갖춘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에게 빠져들게 된 것은 그때 한국에 생중계된 그래미 시상식을 보면서였습니다. 오직 기타 하나로 자신이 반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무대였는데요.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로 무척 놀라웠지요. 기타와 가수가 한 몸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게다가 한 사람이 그 큰 무대에서 내뿜는 에너지와 관객을 압도하는 유려한 라이브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저는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를 다니게 되었는데요. 당시 학생들이 우상으로 꼽는 동문 음악가가 바로 메이어였습니다. 메이어는 비록 학교를 그만뒀지만, 버클리 음대를 다녔고 당시 국내와 달리 미국에서는 인기 절정의 팝 스타였죠. 수많은 훌륭한 음악가들이 버클리 음대를 졸업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를 거쳐 간 음악가 중 메이어 만한 스타는 보기 드물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학교 대공연장에서 메이어의 클리닉(Clinic)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말이 클리닉이지 사실 그 규모는 어마어마 했습니다. 제가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많은 학생이 대공연장을 채우고 있는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거든요. 메이어는 혼자 무대 의자에 앉아 있었고 오직 그의 어쿠스틱 기타 하나와 가지런히 놓인 기타 거치대가 무대 위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다니며 자신이 생각했던 음악에 대한 것, 어떤 것을 배웠고, 무엇이 도움되었으며 또 어떤 것들은 불필요했다 등에 대해 의외로 솔직하고 재치있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당시 제 전공이었던 재즈 작곡은 과제량이 가장 많기로 유명했어요. 메이어 자신도 그 전공을 선택하고는 너무 많은 과제량 때문에 학교를 다녀야 하나를 계속 고민했다는 말에 무척 공감이 가기도 했네요. 그리고 학교에서 하라는 것은 하지 않고 엄지손가락으로 기타 치는 연습만 계속했다는 말에 웃기도 했습니다. 그의 기타 기술을 어떻게 연습을 했는지 직접 보여주기도 했는데 정말 대단하더군요. 지금도 박자에 맞춰 정확히 기계처럼 연주하던 그 모습이 생생합니다.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던 것일까요? 학교에서 모범생은 아니었겠지만, 그 역시 수많은 세월을 많은 고민과 연습으로 채우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물론 그 사이사이 그의 연주와 노래도 이어졌고요. 제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오직 기타 하나로 이루어지는 그의 공연을 보게 된 것이지요. 

어땠었냐고요? 제가 저보다 어린 서양 남자 가수가 노래하는 모습에 그렇게 감동할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폭발적인 에너지 이후 아득히 멀어지는 듯 숨죽이도록 고요하게 공연을 끝내던 그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날 이후 메이어는 저에게 음악의 멋을 가장 잘 아는 남자 가수로 기억에 남게 되었습니다. pudditorium.com 

 
김정범  
 
뮤지션


Posted by 스톰프뮤직